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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 11월 호] 흰 건반과 검은 건반
    • 작성일2017/11/12 14:35
    • 조회 2,198

    흰 건반과 검은 건반_샘터 11월 호

    흰 건반과 검은 건반

    지난 9월 런던패럴림픽 기간에 ‘뷰티플 콘서트, 뷰티플 마인드(Beautiful Concert, Beautiful Mind)’라는 자선공연이 있었다. 이를 위해 뇌성마비 피아니스트 김경민 씨를 비롯해 지체장애 비올리스트 신종호 씨와 시각장애 클라리네티스트 이상재 씨 등 뷰티플 마인드 팀이 런던에 왔다. 장애를 지닌 선수들이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며 인간 승리를 보여주는 동안 음악인들 역시 감동의 무대를 선보였다.

    피아니스트 김경민 씨는 연주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보시다시피 저는 심한 장애를 지닌 채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했고, 손발은 온통 뒤틀려 있었지요. 하지만 저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신께 기도했습니다. 만일 오그라든 제 손가락을 펴 주신다면, 주님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고요. 그러고는 하루에 열 시간 이상 건반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아노를 배운 지 3년 만에 손가락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말하는 동안 그의 얼굴과 몸은 자주 뒤틀리곤 했지만, 표정만은 더없이 온화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의 연주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피아니스트의 뛰어난 기교에 감탄한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내내 울면서 연주를 듣기는 처음이다. 달아나려는 손가락을 붙들고 그가 절망의 벽에 부딪쳤을 수많은 순간들이 한 음 한 음 아프게 박혀 있는 것 같았다. 장애라는 새장을 뚫고 나와 마침내 건반 위에서 자유를 얻은 한 마리 새. 그에게 피아노는 삶을 여는 열쇠이자 세상을 품는 커다란 그릇이 되어주었다.

    이 영혼의 연주를 들으며 나는 새삼 피아노가 흰 건반과 검은 건반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흰 건반 52개, 검은 건반 36개. 총 88개로 이루어진 피아노를 치듯이, 우리의 삶도 절망과 희망이라는 건반을 교대로 짚어나가는 일과도 같다. 만일 흰 건반만 있었다면, 또는 검은 건반만 있었다면, 저 아름다운 생의 음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절망이라는 검은 건반이 있었기에 우리는 마음의 #과 ♭이 만들어내는 섬세한 선율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나희덕_시 쓰는 문학집배원. 조선대학교 교수이자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때론 모호함과 불편함이 좋은 시가 거느린 그림자라고 믿습니다.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어두워진다는 것> 등의 시집을 냈습니다.

    *현재 영국에서 안식년 중인 필자가 영국을 산책하며 만나고 스치는 것들, 그 감미롭고 서정적인 일상을 글과 사진으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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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isamtoh.com/monthly/monthly01_view.asp?seqid=1432&year_v=2012&month_v=11&category=348&category_name=나희덕의 산책